고려의 외교
- 고려 초기(호족 사회) 10~11C
1) 거란(요나라)
2) 광군 양성(정종)
3) 거란의 침임
가. 1차(성종): 소손녕의 침입(993),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강동 6주 획득
나. 2차(현종): 강조의 변(목종을 폐하고 현종 옹립) 구실로 침임, 양규의 활약
다. 3차(현종):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소배압이 침입 ->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
4) 영향
가. 초조대장경 편찬
나. 개경에 나성 축조, 국경 및 강동 6주 지역에 천리장성 축조
2. 고려 중기(문벌 사회) 12C
1) 여진(금나라)
2) 윤관의 활약
가. 별무반 설치(1104, 숙종):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나. 예종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 -> 동북 지방에 9성 축조 -> 여진의 지속적 침입과 회유책책에 반환
3) 거란의 멸망
가. 여진이 금나라를 세우고 거란을 멸망시킴 -> 고려에 군신관계 요구
나.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정권 유지 및 전쟁 방지를 위해 금의 사대 요구 수용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3. 고려 후기(무신 집권기) 13C
1) 몽골(원나라)
2) 몽골에 쫓겨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을 토벌하고(강동성 전투) 몽골과 국교체결 -> 지나친 공물 요구
3) 몽골과의 전쟁
가. 원인: 저고여의 피살(1231)
나. 전개
가) 박서: 귀주성 사수
나) 김윤후: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 사살(1232)
충주성에서 노인과 천민을 중심으로 저항(1253)
다) 강화도 천도(1232, 최우)
라)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며 무신 정권 붕괴, 개경으로 환도(1270)
다. 삼별초의 항쟁
가) 고려의 개경 환도에 반발
나) 강화도(배중손) -> 진도(용장성) -> 제주도(김통정, 향파두리)로 옮기며 저항하였으나 진압
4. 고려 후기의 원 간섭(권문세족기) 13C
1) 원 간섭 내용
가. 영토 축소: 쌍성총관부(철령 이북), 동녕부(서경), 탐라총관부(제주) 설치
나. 왕실 호칭과 관제 격하: 부마국, 왕실의 호칭 격하
중서문하성/상서성 -> 첨의부, 6부 -> 4사, 중추원 -> 밀직사
다. 내정 간섭: 다루가치(감찰관) 파견, 이문소(법원) 설치, 정동행성(개경) 설치 후 일본 원정 추진하였으나 실패
라. 인적, 물적 수탈: 공녀 선발로 조혼 풍습 유행, 응방에서 매(해동청: 사냥매) 조공
마. 문화 교류: 몽골풍(변발, 호복) 유행 <-> 고려양
바. 권문세족의 성장
가) 도평의사사(국정 총괄 기구)와 정방(인사 행정 기구) 장악
나) 음서제로 관직 진출, 대농장 소유
2) 공민왕의 개혁 정책
가. 반원 자주 정책: 친원 세력 숙청, 고려의 관제 복구, 몽골풍 금지, 쌍성총관부 공격
나. 왕권 강화 정책: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대토지 및 농민 문제 해결) 설치, 정방 폐지 -> 신진사대부 등용
다. 결과: 권문세족의 반발 -> 신돈 제거, 공민왕 시해
5. 고려 말기(원, 명 교체기) 14C
1) 왜구와 홍건적
2)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 일부가 고려에 침입 -> 공민왕 안동까지 피신
3) 왜구의 침입으로 최영(홍산 대첩), 최무선(진포 대첩, 화포), 이성계(황산 대첩)
창왕대는 박위가 전함을 이끌고 왜구의 근거지였던 쓰시마섬을 토벌하였음(1389)
cf.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
4) 고려의 멸망
가.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 고려의 철령 이북 땅에 직할지 설치
나. 우왕과 이를 반대한 최영이 요동 정벌 단행
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 4불가론)
가)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하는 것이 첫 번째 옳지 못함이요,
나)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두 번째 옳지 못함이요,
다)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니 세 번째 옳지 못함이요,
라)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가 역병을 앓을 것이니 네 번째 옳지 못함입니다
라. 과전법 실시(1391, for 대농장 몰수, 전/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 조선 건국(1392)